저번 포스팅에서 우리는 세계 7대 난제 중 '리만 가설'에 대해 알아보았다.
매달려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리만 가설' 이외에도 세계 7대 난제로 불리는 다양한 문제들이 있는데, 그 7대 난제에는
'나비에의 스톡스'
'리만 가설'
'버츠와 스위너톤의 다이어 추측'
'양-밀스 가설의 존재와 질량 간극'
'호지 추측'
'P-NP 문제'
'푸앵카레 추측'
이렇게 자리잡고 있다.
리만가설은 본 블로그 포스팅으로도 다룬 적 있는데(링크), 그나마 이해를 도울 수 있게 끔 쉽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었으나, 나머지 난제는 아예 수식 빼고는 설명조차 불가능하다.
유일하게 증명된 푸앵카레 추측 역시 증명되었다고 우습게 보면 곤란하다.
인류 탐험의 역사에서 마젤란은 지구를 돌고 확신했다. 지구는 둥글다.
많은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한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바로 푸앵카레였다. 마젤란의 방식은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만약 지구가 도넛 모양이라도 마젤란의 배는 역시 한 바퀴 돌아서 원래 위치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가지 제안을 했는데, 배에 밧줄을 달고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밧줄을 끌어당겼을 때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다면 지구는 둥글다는 것. 만약 어딘가에 걸린다면, 지구는 도넛 모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푸앵카레는 생각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혹시 우주의 모양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마침내 2006년 푸앵카레 추측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이는 우주의 모양을 알아냈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푸앵카레 추측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것이다.
'모든 경계가 없는 단일 연결 컴팩트 3차원 다양체는 3차원 구면과 위상 동형이다'
모든 경계가 없는, 단일 연결, 컴팩트?
일단 컴팩트라는 표현은 1906년 프랑스 수학자 모리스가 도입했다. 쉽게 말해 닫혀있고, 무한하게 뻗어나가지 않는 3차원 다양체는 3차원 구면과 위상 동형이다.
다시 말하자면, 명확하게 끊어지는 부분이 없이 하나로 연결된 닫혀있고 무한하게 뻗어나가지 않는 세상에 다양한 형태는 당구공(3차원 구면)과 위상 동형이라는 것이다.
가상의 밧줄을 이용해서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면, 우주에 어떻게 밧줄이 놓여있더라도 자르거나 끊지 않고 한 점으로 모을 수 있다면, 우주는 당구공과 위상동형이라는 것이다.
위상 동형. 삼각형, 사각형, 원은 분명히 다 다른 도형이다. 그러나 위상수학에서는 이들을 모두 같다고 보고 '위상 동형'이라고 부른다. 기존 기하학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다. 최근 유명했던 빨대 논쟁에 대해 알고 있는가? 빨대는 구멍이 한 개인가 두 개인가? 하는 문제다. 위상수학에서는 당연히 구멍이 한 개다. 빨대를 압축시켜서 계속 줄여도 빨대는 결국 그대로 빨대인 것이다.
입구로 뭔가를 넣었을 때 반대편으로 나온다면 모두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다.
매우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모두가 보이듯이 대충 비슷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럼 왜 대충 비슷하다고 보는 것일까? 바로 우주의 형태를 알아내기 위해 위상수학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집을 살 때를 생각해보자. 집이 22평이라면 방이 몇 개인지, 문은 어디 달려있는지 등이 굉장히 중요하다. 만약 집이 100평이라면 어떨까? 위와 같은 것들은 여전히 중요하겠지만 이미 충분히 넓기 때문에, 아주 꼼꼼히 보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2만 평, 혹은 그 이상 크기의 집이라면, 세세한 구조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지구 밖으로 나가서 우주의 형태를 보면 좋겠지만, 이 우주는 굉장히 넓기 때문에 형태를 알아내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주 단순화시킨다면, 형태를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푸앵카레 추측의 접근 방법이었다.
우주를 탐험하기 위해서는 대강의 형태를 알아야 했고, 그래서 그는 인류에게 아주 위대한 추측을 던진 것이다.
푸앵카레는 우선 우주가 몇 차원인 지부터가 궁금했다. 지구 표면은 몇 차원일까? 3차원일까?
그렇지 않다. 지구의 표면은 2차원이다. 우리는 지구에서의 모든 위치를 위도와 경도 단 2개의 차원으로 표현한다. 즉, 지구는 3차원이지만 지구 표면은 2차원이라는 뜻이다. 고층아파트에 올라가면 3차원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래 봐야 높이는 지구 입장에서 무시할만한 수준이다.
우리는 지구 표면을 돌아다닌다. 2차원의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지구는 3차원이다. 그렇다면 한 단계 올라가 3차원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면, 실제로 그것은 4차원일지도 모른다. 만약 우주가 4차원이고, 우리는 우주선을 타고 4차원의 표면인 3차원을 여행하는 것이라면, 2차원 지구 표면에서 3차원 지구의 형태가 구라는 걸 알아냈던 방법을 똑같이 쓸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진짜 푸앵카레 추측이다.
우주에 어떻게 밧줄이 놓여있더라도 자르거나 끊지 않고 한 점으로 모을 수 있다면, 우주의 모양은 당구공의 모양과 비슷하다.
즉, 푸앵카레의 추측을 증명한다는 것은 우주가 구형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구형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푸앵카레의 책 마지막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이 추측은 우리를 아득히 머나먼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놀랍게도 푸앵카레 추측의 결정적인 실마리는 가우스나 오일러 같은 세기의 천재가 아닌, 평범한 모범생이자 노력파였던 스티븐 스메일 박사에게서 나왔다.
수학계의 에이스도 아니었던 그가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가 해낸 것은 바로 5차원 이상에서의 푸앵카레 완벽한 증명. 보통 낮은 차원에서부터 고민하던 다른 수학자와는 달리, 높은 차원부터 반대로 접근해서 푸앵카레를 증명해버린다.
일단 5차원 이상만 되면, 푸앵카레 추측이 통한다는 뜻이다. 왜 차원이 높으면 푸앵카레 추측이 통할까?
우주에 어떻게 밧줄이 놓여있더라도 이를 자르거나 끊지 않고 한 점으로 모을 수 있다면, 우주의 모양은 당구공과 대충 비슷하다. 푸앵카레 추측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밧줄을 한 점으로 끌어당길 때 그 밧줄들이 엉켜버리는 것이었다.
그럼 차원이 높으면 왜 엉키지 않을까?
엉킨다는 것은 쉽게 말해 겹친다는 뜻인데, 이어폰을 바닥에 던져놓으면 줄이 꼬여있지만 이를 집어 들면 줄이 풀린다.
이는 높이라는 하나의 차원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2차원의 나뭇가지 그림자는 전부 겹쳐있지만, 3차원에 있는 나뭇가지들은 전혀 겹쳐있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차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서로 겹침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에, 5차원 이상의 차원에서는 푸앵카레 추측이 증명될 수 있었다.
스티븐 스메일 박사는 31살에'필즈상'을 받고 UC버클리의 교수가 된다. 고차원에서부터 거꾸로 내려오는 증명 방식이 유행하는 가운데, 마이클 프리드먼은 한 차원 더 가까워진 4차원에서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했고, 1986년 필즈상을 받게 된다. 아직도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에서 불철주야 연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에서는 증명되지 못했다. 대신 같은 해, 미국의 수학자 윌리엄 서스턴은 3차원에서 우주의 형태가 될만한 후보를 8개나 찾아냈다. 이게 바로 기하화 추측.
선천적으로 원근감을 느끼지 못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사물 간 거리를 파악하는 자신만의 훈련을 했고, 결국 공간의 구조를 누구보다 훌륭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구 모양 1개와 도넛 모양 7개 중에서 반드시 우주의 모양이 있다.
밧줄을 한 점으로 모으려는 푸앵카레, 우주는 오직 8개의 형태만 있다고 주장하는 윌리엄 서스턴.
기하화 추측이 증명되면, 존재하는 8개의 형태 중에 밧줄을 잡아당겼을 때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건 구 모양뿐이니 자연히 우주는 당구공 모양이 되며, 푸앵카레의 추측도 증명된다. 하지만 우주가 8개의 형태로만 존재하려면, 존재하는 모든 형태들을 어떻게든 8개 중에 하나와 비슷하게 다듬어야 하는데, 워낙 주름진 형태가 많아, 매끈하게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리처드 해밀턴은 리치 흐름이라는 미분방정식을 이용해서, 마치 보톡스 주사를 맞는 것처럼 형태의 주름을 펴는 방법을 제시했다. 물론 주름을 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리치 흐름으로도 쉽게 펴지지 않는 큰 각들이 여전히 존재했다. 그리고 2002년 11월 11일, 온라인 논문 자료실에 39페이지의 논문이 하나 올라왔다. 바로 윌리엄 서스턴의 기하화 추측을 증명하는 내용이었다. 어디 대단한 곳에서 발표를 한 것도 아니었고, 유명 저널에 투고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레고리 페렐만' 1904년부터 98년 동안 누구도 못했던 가설의 증명, '밀레니엄 난제'해결을 37살 젊은 수학자가 해냈다는 것이었다. 리치 흐름으로 펴지지 않던 각을 제거하는 '특이점 수술법'을 통해 존재하는 모든 형태를 딱 8개 형태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우주의 형태가 8개밖에 없으니 그중에 밧줄을 모을 수 있는 형태는 당구공뿐. 3차원에서 기하화 추측과 푸앵카레 추측을 한 방에 증명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쉬워 보이지만, 사실 물리학의 엔트로피까지 응용했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단 39페이지의 짧은 논문을 검증하기 위해 예일대와 콜롬비아대 등 저명한 수학자들이 모여 팀을 짜고, 무려 3년간 검증한 끝에 1000페이지에 달하는 해설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2006년 푸앵카레의 추측이 완전히 증명되었다고 선언한 존 모건 교수는 페렐만의 증명에 이렇게 소감을 남겼다.
'우리는 이 어려운 난제의 증명이 끝나버린 것에 낙담했다. 그리고 위상수학을 사용하지 않고 증명한 것에 낙담했다. 심지어 증명한 내용을 처음에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것에도 낙담했다.'
천재 수학자 오일러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박사를 마치고 스탠퍼드, 프린스턴 등 유명 대학에서 초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수학 외에 다른 것은 안 하겠다는 일념 하에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테클로프 수학 연구소로 진로를 결정한다.
1996년 유럽 수학 회상도 자신의 연구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한 이후에, 중국계 미국인 수학자 '야우 싱퉁'이 페렐만의 증명은 틀렸고 우리가 한 증명이 진짜다 라는 내용의 326페이지짜리 논문을 냈는데, 실제로 야우 싱퉁 의 논문은 페렐만의 논문을 그대로 베낀 것뿐이었다.
논문이 올라왔던 아시아 수학 저널에는 사과문이 올라왔지만, 이미 삐진 페렐만은 2006년 8월 국제 수학자 대회에서 필즈상을 거절했다. 국제 수학 연맹 회장인 존 볼이 러시아까지 찾아가서 사과를 하고자 했으나, 이 역시 거절했다. 미국 우수대학 등 교수직도 전부 거절했고, 3년 후 클레이 수학 연구소에서 밀레니엄 난제를 하나 해결했으니 11억 상금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상금 받아서 기부하라고 했으나 거절했다. 러시안 과학 아카데미에서 정회원으로 추천했으나 거절했다. 우리나라 EBS도 인터뷰를 하러 몇 번 찾아갔으나 모두 거절했다. 현재 그는 어머니와 단 둘이 작은 아파트에서 나라에서 주는 실업수당으로 끼니를 연명하며 4차원에 존재하는 형태들은 몇 개일지 찾고 있다.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한 페렐만의 논문에 대해 다른 수학자들이 너무 생략된 부분이 많아 이해하기 힘들다고 불평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논문에는 단 한 문장도 빼거나 더할 것이 없다.'
인류에게 위대한 추측을 던졌던 푸앵카레. 그는 이러한 말을 남겼다.
'과학자가 자연을 연구하는 이유는 쓸모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아름답기 때문이다. 만약 자연이 연구할 가치가 없다고 한다면, 우리의 인생 또한 살 가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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