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세계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양자역학은 완전한 학문이 아니다."
"확률로써 설명하는 코펜하겐 해석은 단지 과학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을 뿐.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숨은 변수'를 찾아내면 미시세계 역시 정확하게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해질 것이다."
EPR이론. 1935년 아인슈타인이 뜻을 같이하는 과학자들을 모아서 양자역학을 반박하기위해 공동 연구했던 이론이며, 각 과학자들의 이름 앞글자를 따서 EPR이론이라 한다. (Einstein, Podolsky, Rosen)
이 EPR이론에서는 양자역학에 등장하는 '양자 얽힘 현상'도 지적하는데, 이는 서로 멀리 떨어진 입자가 연결되어있다는 이론이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서로 양자적으로 얽혀있는 두 입자 중 하나를 파악하면, 다른 하나도 알 수 있게 되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정보 전달'이 빛보다 빠르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보다 빠른 건 없으므로 이것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이를 EPR역설에서는 '국소성의 원리에 위배된다.'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곧 코펜하겐 해석이 틀렸음을 의미하므로 양자역학이 불완전한 학문이 되는 것이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EPR역설에서 물리적 실재에 대해 다루었다.
미시세계에서 입자는 위치와 운동량이 있으며 즉, 물리량이 있다는 것이다. 관측할 때 아무런 교란없이 이 물리량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면 이것은 물리적 실재가 있는 거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EPR역설이 발표된 직후, 닐스 보어는 바로 다음회 48호에 반박논문을 게재한다.
제5차, 6차 솔베이 회의에서부터 계속된 공방전. 이번에는 과연 어떻게 반박했을까?
우선, 닐스 보어는 EPR역설에서 말하는 물리학적 실재성에 대해 반박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하면 입자를 관측하지 않으면 실재할 수 없다. 비록 관측하더라도 위치와 운동량 등 물리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EPR역설에서 말하는 물리적 실재의 기준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측정하지 않으면 물리량을 알 수 없고, 물리량을 알 수 없으면 그것이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실재성을 구성하는 것 중 하나가 측정 즉, '관측'이라는 행위인데, EPR역설에서는 이러한 측정과 물리적 실재를 별개로 구분 짓는다."
닐스 보어는 EPR역설의 물리적 실재가 상당히 모호한 표현이며 정확하지 않으니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EPR역설에서는 하나의 사고 실험을 제안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A와 B라는 입자가 충돌 후 서로 반대방향으로 날아간다. 여기서 A와 B의 질량이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A의 위치를 측정하면 '운동량 보존 법칙'에 의해 B의 위치 역시 측정이 가능해진다. 서로 멀리 떨어진 A와 B입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없다는 EPR역설의 국소성의 원리에 의해 A에 대한 위치와 운동량 측정 행위는 B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이러한 전제 하에, A를 정확하게 측정하면 B 역시 정확하게 측정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A를 측정한다면 B를 관측하지 않고서도 즉, B를 교란시키지 않더라도 B의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EPR역설이 맘에 들었던 '데이비드 봄'은 이 사고 실험을 업그레이드하여 입자 내 전자의 스핀을 이용한 사고실험을 추가적으로 고안한다.
스핀. 입자를 구성하는 전자의 회전운동을 스핀이라 한다.
전자는 특정 축을 기준으로 회전하고 있는데,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면 스핀 업, 시계방향으로 회전한다면 스핀 다운 상태이다.
데이비드 봄의 사고 실험에서는 각운동량이 0인 입자가 A, B 입자 둘로 나누어졌다고 가정한다. 여기서 A입자의 x스핀값을 측정하여 x스핀이 스핀 업이라는 것을 알아내면, 처음의 각운동량이 0이었으므로 당연히 각운동량 보존 법칙에 의해 B입자의 x스핀값은 스핀 다운이어야 한다.
이번에도 충분히 멀리 떨어진 두 물체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없다는 '국소성의 원리'에 의해서 A입자에 대한 스핀 관측은 B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한다. A입자의 z스핀을 측정하면 B입자의 z스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B의 x, z스핀값을 모두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물리량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미 정해져 있던 A의 스핀값을 알아내면 B의 스핀은 관측하지 않아도 알아낼 수 있다는 것.
스핀은 실재하는 물리량이며 불확정성의 원리는 틀린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워낙 정교한 사고 실험이었으나, 닐스 보어는 이마저도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을 통해 반박했다.
과학자 슈테른과 게를라흐는 전자의 스핀값을 알아내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었는데, 이것이 바로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이다. 이들은 은 원자를 가지고 실험을 진행했다. 은 원자 중 z스핀의 업, 다운을 구별하여 +z스핀과 -z스핀 반반으로 나눈 뒤, 이를 통해 얻어진 +z스핀 은 원자만을 가지고 다시 x스핀의 업, 다운을 구별하여 +x, -x스핀의 반반으로 나누었다. 이때 +x스핀인 은 원자만 모여있는 그룹을 보면 이는 당연히 +z, +x스핀인 은원 자일 터였다. 그리고 이를 다시 z스핀의 업, 다운을 구별하여보니 이게 웬 걸, +z스핀만 걸러져야 할 원자들이 +z, -z스핀 반반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x스핀만 모아서 x스핀을 구별해보아도 마찬가지.
스핀값이 정해진 물리량이 아니라 측정할 때마다 50:50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이러한 실험의 결과로, 입자의 스핀 값은 측정 전에는 절 대 알 수 없다는 점이 확실시되고, 닐스 보어는 입자의 스핀 역시 불확정성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라 지적했다. A입자의 x스핀을 측정하면 A입자의 z스핀값을 알 수 없게 되고, z스핀값을 측정하면 x스핀값을 알 수 없게 된다는 것.
당연히 B의 입자의 스핀값은 말할 것도 없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EPR역설에 완전히 반박하는 주장이며, 더군다나 국소성의 원리에 관해서는 미시세계에서는 두 입자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대립은 향후 수 십 년간 치열하게 공방전이 진행되었으나, 이는 모두 이론과 사고 실험에 기반한 논쟁뿐이었다. 그러나 약 30년 후, 영국의 과학자 '존 스튜어트 벨'이 한 수식을 발표한다.
EPR논문을 보고 감명을 받은 벨은 EPR역설이 옳다고 생각했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연구한 끝에 '벨의 부등식'을 발표한 것이다. 이 부등식이 성립한다면 아인슈타인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되는 것이고, 성립하지 않는다면 양자역학의 입지가 더욱 견고 해지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벨은 가상의 실험과 부등식만 제안했을 뿐, 실제 실험을 성공시킬 수는 없었다.
이후 수많은 과학자들이 벨의 부등식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에 도전했고, 마침내 1982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알랭 아스페'는 벨의 부등식을 기반으로 한 실험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실험 결과는 애당초 '벨'의 기대와는 다르게 아인슈타인의 EPR역설보다는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이 더 타당하다는 점을 암시했고,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벨이 양자역학의 입지를 더 굳건하게 하는 데에 도움을 주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오늘날이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EPR역설은 아예 말이 안 되는 헛소리였던 걸까? 그렇지만도 않다.
여전히 양자 얽힘 현상에서 빛보다 빠르게 일어나는 '정보 전달'의 특수 상대성이론을 위배하는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뿐더러,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다세계 해석, 앙상블 해석 등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 갈래와 해석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1900년 태동하여 고전역학으로 자리 잡았던 패러다임을 뒤흔든 양자역학의 역사와 실체를 파헤쳐보며 포스팅해왔다.
불과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역사이지만, 그 사이에 과학은 정말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과연 모든 의문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되는 날이 올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