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결코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저번에 포스팅했던 솔베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이 남긴 말이다. 아인슈타인으로 대표되는 고전 역학자들은 코펜하겐 해석을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5차, 6차 솔베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의 변형 이중 슬릿 사고 실험, 상자 속의 시계 사고 실험 등이 모두 코펜하겐 학파의 닐스 보어에게 논파당하고 양자역학의 입지가 굳어졌으나 여전히 고전 역학자들은 이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양자역학이 태동하고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1900년대 초기에, 과학자들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를 연구했다. 그러나 연구를 거듭할 수록 정확한 것은 없고 모른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지를 펼치는 학파가 있었으니 이것이 '코펜하겐 학파'이다. 닐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막스 보른으로 대표되는 코펜하겐 학파.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닐스 보어는 이러한 불확정성의 원리를 좀 더 굳건하게 하는 상보성의 원리를 발표했다. 막스 보른 역시 미시세계를 설명할 때는 확률로서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자 속에 전자가 있다면, 전자는 상자 내부 모든 곳에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중첩 상태이며, 관측하는 순간 파동 함수가 붕괴되고 한 점에 위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고전역학자들의 여러 공격에도 불구하고 5차, 6차 솔베이 회의에서 닐스 보어는 양자역학의 입지를 좀 더 견고히 다지는 데에 성공하여 슬슬 과학계에서도 정설로 받아들여지는가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은 여전히 이 코펜하겐 해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이 제시했던 사고 실험들이 모두 논파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이 불완전한 이론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인슈타인은 뜻을 같이하는 고전역학 과학자들을 모아서 연구를 진행했으며, 양자역학의 오류를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결과 1935년에 한 논문을 발표했다.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기술이 완전하다고 여길 수 있는가?'
라는 이름의 논문은 오늘날에 E.P.R역설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서 E.P.R은 아인슈타인과 뜻을 같이하여 연구를 진행한 과학자들의 이름 앞글자를 따온 것이다.
E(아인슈타인), P(포돌스키), R(로젠)
모든것이 완벽한 것처럼 보였던 양자역학. 과연 EPR역설에서는 이러한 양자역학의 어떤 부분을 공격했을까?
EPR역설은 양자얽힘 현상과 양자중첩 현상을 비판했다.
양자 얽힘이란 무엇인가?
양자역학에서 양자 얽힘이란, 상호작용했던 두 입자가 마치 서로 끈으로 연결된 것처럼 똑같이 행동하는 이상한 현상을 말한다.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이 일은 현실세계로 치면 똑같이 행동하는 일란성쌍둥이 정도가 될까?
그런데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이 양자얽힘은 한쪽의 상태가 관측되면 다른 한쪽의 상태도 그 즉시 결정된다고 한다.
입자 하나의 상태를 측정하면 다른 쌍둥이 입자 하나의 상태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간단한 사고실험으로 예를 들어보자.
1. 전혀 구별할 수 없는 똑같은 상자가 2개 있다.
2. 상자를 열어보기 전 까지는 상자 속을 절대 볼 수 없다. 이 두 상자 안에는 양자적으로 얽혀있는 양자 공이 각각 들어있는데, 빨간색 아니면 파란색 공이다. 3
3. 한쪽에서 파란 공이 나오면, 다른 쪽에서는 빨간 양자 공이 나온다.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관측을 통해서 한쪽의 정보가 정해지면 그 즉시 다른 한 쪽의 정보가 전해지는 것을 '얽혀있는 정보'라고 하고 이 두 양자의 관계를 양자적으로 얽혀있다고 한다.
이는 이미 결정된 공을 단순히 상자를 열고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코펜하겐 해석이 적용되는 미시세계에서는, 상자를 열기 전에는 빨간색 공과 파란색 공이 중첩되어있는 상태이고, 상자를 열어서 관측하기 전까지 이 공은 중첩된 상태에 있다가 상자를 열고 관측하는 순간 중첩 상태가 붕괴되어 공의 색이 확정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갖는 성질을 양자 중첩이라고 하며, 막스 보른은 이를 확률로 표현했다.
"이런 중첩 현상은 양자 세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양자 공이 빨간색일 상태와 파란색일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며 양자 공을 측정하기 전까지는 빨간색과 파란색 공이 확률적으로 중첩된 것이다."
관측하는 행위 자체가 공의 상태를 결정한다는 것. 이것을 양자 붕괴라고 한다.
이를 앞서 말한 양자 얽힘과 연계했을 때, 중첩 상태인 공을 확인하는 순간 다른 한쪽의 상태 역시 결정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양자 얽힘 현상을 공격했다.
포돌스키, 로젠과 함께 연구한 끝에 'Physical Review' 47호에 실린 EPR논문은 코펜하겐 해석의 완전성과 실재성을 비판했다.
'달은 관측하건 말건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달을 관측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관측을 해야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엄연히 떠있는 달을 안 보면 없다고 하다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달이기에 물리량이 있다. 그러나 관측하기 전 까지는 물리량을 확률로 예측하고, 관측하는 순간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는 하나 관측하는 행위 자체가 관측대상에 교란을 일으키기 때문에 교란 없이 관측대 상의 물리량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는 것이며 계산을 한다고 해도 정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
또한 양자역학을 완전성과 실재성 측면에서 불완전한 학문이라고 공격하며, 현실을 예측하지도 설명하지도 못하고 확률을 설명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 우리가 이론과 수식 규칙을 알아내지 못했을 뿐, 이러한 '숨은 변수'를 알아낸다면 미시세계 역시 확률뿐이 아니라 정확하게 모두 설명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EPR역설은 대표적으로 국소성의 오류를 지적한다.
'충분히 멀리 떨어진 두 물체는 곧바로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는 원리'이다.
예컨대, 양자 공이 서로 양자적으로 얽혀있는데, 이 입자 간의 정보전달이 빛보다 빠를 리가 없다는 것이다.
양자 공이 관측되는 즉시 5광년 넘는 행성에서의 양자가 결정된다면, 이는 광속보다 빠른 정보전달이 일어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위배된다.
한 입자가 다른 입자에 영향을 주려면 어떠한 형태로든 그 정보가 전달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공간의 매개가 필요하고, 광속을 절대 넘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이러한 '양자 얽힘'이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이후의 닐스 보어의 반박은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