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 있다.
도서관에 꽂혀있던 여러 책들 중, 베스트셀러 중에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던 책이 한 권 보였는데 바로
카를로 로밸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책이었다.
사실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에는 제목과 표지의 디자인이 다소 크게 비중을 차지하긴 하나, 기본적으로 물리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은 항상 관심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그냥 자연스럽게 손이 갔던 것도 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우리가 누구든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간에 시간은 항상 동일하게 흐른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루 24시간이 주어져있고,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한 방향으로 흐르며 그 반대로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라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그러나,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등장한 후 도래한 현대 물리학에서는, 그동안 받아들여졌던 이러한 통념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그동안 받아들여졌던 시간이라는 것의 특징이 전부 틀렸다는 이야기다.
시간은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각각 다르게 흐른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것 역시 아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는 '중력에 의한 시간 지연'이 정말 잘 반영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인공 일행이 블랙홀 근처에 막대한 중력을 가진 행성에 잠시 갔다 온 사이, 우주선에 남아있던 일행이 23년 더 늙어있던 것이다.
'질량이 큰 물체에 가까이 있을 수록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질량이 클 수록 강한 중력장을 만들어 시공간이 휘어진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또한, 만약 질량이 동일한 행성에 있다고 할 지라도, 중력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 있다면(ex 높은 산의 정상), 상대적으로 중력의 영향이 높은 곳에 있는 사람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빨리 늙게 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서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게다가, 정지해있는 사람보다 속도를 갖고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더 천천히 흐른다.
이는 특수상대성이론에 등장하는 '시간 지연'에 대한 내용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우주선에서 상하 반사되는 빛을 5초간 발사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를 우주선 밖의 관측자가 보았다면, 빛의 궤적은 상하가 아닌 대각선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궤적의 길이는 더 길어졌다.
빛의 속도는 c(약 초속 30만km)로 항상 일정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바깥의 관측자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는 걸 알 수 있다.
우주선 안에 있는 사람보다 가만히 정지해있는 사람의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르고, 더 빨리 늙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 책을 읽고 나면, '지금'이라는 단어의 정의도 알 수 없게 된다. 물리학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현재'가 온 우주에 적용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몇 광년씩 떨어진 행성에서는 내가 말하는 '지금'이라는 순간을 정확히 특정 할 수 없다는 것.
예를 들어, 10광년 떨어진 행성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10년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그 행성의 모습은 과거 10년 전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지금'은 우리가 보는 그 행성의 10년 후 모습인가?
그렇게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역시 아니다.
그 행성의 질량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주변의 시공간 휘어짐이 다르고, 만약 그 행성의 질량이 우리 지구보다 훨씬 크다면, 그만큼 시공간이 더 휘어져있기 때문에 지구에서의 1년간의 시간이 그 행성에서의 10년일 수도 있다.
슬슬 머리가 아파오지 않는가?
물리학적으로 온 우주에 '지금'과 대응되는 순간이 없다. '지금'이라는 개념은 지극히 우리와 가까이 있는 것에만 한정된 개념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시간의 방향성.
지금까지 쌓아왔던 고전역학의 방정식들은 이 시간의 '방향성'을 규정하지 않는다.
뉴턴의 법칙이든, 맥스웰, 파인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역시 시간값 t가 0보다 커다란 사실을 전제하지 않고도 정상적으로 잘 작동한다는 것이다.
만일 시간값 t가 0보다 작은 음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즉, 시간이 역방향으로 흐른다고 가정해도 위 방정식들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
그러나, 물리학에서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단 하나의 법칙이 있다. 바로 열역학 제2법칙이다.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 S의 변화량은 항상 양수이다.
이 법칙은 엔트로피의 비가역성을 나타내며, 온 우주는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변화해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과거와 미래의 비가역성을 나타내는 건 바로 이 엔트로피 하나인 것이다.
과거에는 엔트로피가 낮았다. 미래에는 엔트로피가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왜 엔트로피가 낮았는가? 시간은 어디서 생긴 건가?
이를 빅뱅으로 설명할 수도 있고, 시간 자체가 환상이며 모든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의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이를 '양자의 불확정성'으로 설명한다.
이 부분이 정말 참신했고, 그럴듯했으며 마음속에 와 닿았다.
카를로 로벨리는 이러한 시간의 방향성의 구분 즉, 엔트로피의 존재가
'우리가 세상을 희미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등장한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엔트로피라는 건 '무질서도'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과연 무질서가 무엇인가?
우리가 방을 어질러놓았다. 이걸 지구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과연 무질서 해진 것일까?
수억 개의 행성을 우주에 흩뿌려놓았다고 한들, 우주의 관점에서는 그게 무질서한 것일까?
저자는 엔트로피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우리가 세상을 희미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미시세계를 '불확정성의 원리'로밖에 설명할 수 없고, 통계와 확률로밖에 설명할 수 없고, 미시세계의 입자들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하는 등,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세계를 희미하게 인지하기 때문에 엔트로피가 존재할 수 있고, 양자역학의 미시세계까지 물리학으로 면밀하게 설명된다면 시간의 흐름이 없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 엔트로피가 없어진다면, 과거와 미래의 흐름이 없어지고 과거와 미래의 차이가 없어지는 것이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현대 물리학이 발전하고, 패러다임이 뒤바뀌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제는 '시간'의 존재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우리는 통념적으로 시간이란 건 되돌릴 수 없다고,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진다고들 말하고 또 받아들였으나, 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에서 양자역학과 시간이라는 개념 즉, 엔트로피를 버무린 설명이 참 신박하고 흥미로웠다. 현대 과학계의 여러 이론들을 접하면서, 이렇게 새로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주장도 파헤쳐보면, 사고의 틀이 확장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기분이 상쾌해진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시간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치겠지. 결국은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