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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물리학

양자역학의 발전 - 제 6차 솔베이 회의 / 코펜하겐 해석 / 현대물리학 / 상대성이론 / 아인슈타인 / 불확정성 원리 / E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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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자역학이 한창 태동하고 발전하던 1900년대 초, 고전물리학이 지배하던 과학계의 기존 패러다임이 붕괴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리잡을지, 치열한 논쟁과 연구가 계속되던 그 때.

 

  제 5차 솔베이 회의에서는 닐스보어를 필두로 한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학파와 아인슈타인을 필두로 한 고전물리학자들의 정면승부가 펼쳐졌었고, 아인슈타인의 변형이중슬릿 사고실험의 모순점을 닐스보어가 지적함으로 그 결과는 코펜하겐 학파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과학계에서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고전물리학자들은 제 5차 솔베이 회의가 끝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했고, 결국 3년 후 다시 열린 제 6차 솔베이 회의에서 또다시 정면승부를 펼치게 된다.

 


코펜하겐 해석에 관해서는 저번 포스팅에서도 다루었었다.

미시세계를 연구하면 연구할 수록,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없으며 그것이 곧 미시세계의 본질이다라는 것.

모른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상자 안에 전자가 있을때, 이 전자는 상자 내부 어디에나 있으며,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지, 어느 위치에 있는지 확률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 곧 코펜하겐 해석.

 

반면에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고전물리학자들의 생각은 '과학적으로 모든 것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계산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물리학을 확률로서 설명하는 양자역학을 비판했다.

우리가 모르는 건 모르는 그대로 완벽한 것이 아닌, 측정장비가 충분히 정교하지 못하거나 과학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양자역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하늘에 있는 달을 보아라. 관측을 해야만 저 달이 존재하는가?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이렇듯, 거시세계에서 일어나지 않는데 미시세계라고 일어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눈을 감는다고 해서 달의 존재가 사라지는가?"

 

아인슈타인이 닐스보어를 반박할 때 했던 말이다.

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고전물리학에서는 관측여부에 상관없이 물질이 존재한다는 개념이 기본 전제되어있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는 관측을 해야만 물질이 비로소 존재하는것이다.

 

당시 솔베이 회의에 참가했던 물리학자 '유진 위그너'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우주가 실재하기 위해서는 관측이 필요하다. 우주가 그 존재를 입증하려면 의식을 가진 생명체의 관측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고양이 자신만이 안다."

 

슬슬 이 논쟁을 바라보는 당신도 머리가 복잡해질 것이다.

관측의 정의는 무엇인가? 단순히 육안으로 그 물질을 보는 것인가?

존재라는 것은 무엇인가? 실재(Reality)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인 문제까지 어우러진 복합적인 논쟁이 계속되었다.

 

 

  제 5차 솔베이 회의에서 닐스보어는 아인슈타인의 모든 질문과 공격을 막아내 양자역학을 사수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포기하지 않고, 3년 후 1930년에 시작한 제 6차 솔베이 회의에서 또다시 양자역학을 무너뜨릴 사고실험을 준비했다.

코펜하겐 해석을 무너뜨리기 위해 3년간 연구를 해왔던 것이다.

 

'전자가 어디있는지 파악하면 그 운동량을 파악할 수 없고, 운동량을 파악하면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 동일한 이유로, 물체가 움직인 시간과, 그동안 방출된 에너지를 동시에 알 수가 없다.' 라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 즉, 시간과 에너지도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라는 것.

이는 미시세계의 근본적인 현상이며 과학의 발전이나 관측장비의 정교함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확정성의 원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상자 속의 시계'라는 사고실험을 제안했다.

 

상자 속의 시계 사고 실험 구상도

  상자 오른면에는 작은 구멍이 있고, 이를 여닫을 수 있는 조그마한 창문이 있다.

상자 안에는 시계가 있으며, 이 시계는 창문과 연결되어 창문이 열고 닫히는 시간을 정확하게 잴 수 있다.

상자의 위에는 용수철이 달려있고, 밑에는 무게추가 달려있다.

용수철의 길이변화를 통해 상자의 질량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실험의 내용은 이렇다.

1. 상자에 광자 1개만 넣은 다음 상자의 질량을 잰다.

2. 상자 안의 광자가 한 개 빠져나오도록 짧은 순간 창문을 열고 닫는다. 실험장치는 굉장히 정교하여 그것이 가능하다.

3. 창문이 열려있던 시간은 상자속의 시계가 잰다.

4. 광자 1개의 질량을 구하는 건 간단하다. 광자가 들어있던 상자의 질량에서 광자가 빠져나간 상자의 질량을 빼주면 된다.

 

 -> 광자 1개가 상자 밖으로 나가는 동안 상자가 열고 닫히는 시간, 상자의 무게로 알아낸 질량을 동시에 구할 수 있다.

이 질량으로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방정식 E=mc^2를 통해 광자 1개의 에너지를 알 수 있게 되며,

시간과 에너지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게 되므로 불확정성의 원리는 틀렸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다!

 

닐스 보어는 제 6차 솔베이 회의 기간 동안, 이 사고실험으로 인해 극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사고실험의 빈틈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만약 저 사고실험이 옳다면, 불확정성의 원리가 무너지고 그를 전제로한 상보성의 원리가 무너지며, 양자역학 및 코펜하겐 해석 전체가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닐스 보어는 회의기간동안 잠도 제대로 못자고 연구에 매진하여, 결국 회의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이 사고실험의 파훼법을 찾아내었다.

 

 

닐스 보어의 반박은 이렇다.

 

1. 광자가 빠져나간 후 시계를 보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관측해야 한다.

관측하는 순간, 광자가 상자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 때문에 질량을 측정하는 눈금이 변화하게 되고, 시간을 측정하는 순간의 질량을 정확하게 잴 수가 없어진다는 것. 즉, 눈금과 시계를 동시에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2. 상자의 무게를 측정할 때 역시 문제가 있었다. 무게 측정을 위해 눈금을 읽을 때, 눈금바늘에도 광자가 부딪히기 때문에 절대로 정지해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광자때문에 바늘이 흔들리며, 이는 정지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시적으로는 계속 흔들리고있는 상태이다. 관측하는 순간에는 용수철이 흔들리며 상자가 흔들리고있기 때문에 상자의 운동량이 불확실해진다는 것. 즉, 눈금의 위치와 상자의 운동량을 동시에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3.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중, 중력에 의한 시간지연에 관한 내용이다.

중력이 강할수록 시간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흐르며,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상자에서 광자가 방출되었을 때 상자의 질량이 줄어들고, 그만큼 중력이 약해져 중력장의 변화가 시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특히 3번째 반박의 경우, 아인슈타인 자신의 상대성이론으로 자신의 사고실험이 반박당한 꼴이니, 아인슈타인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인슈타인은 제 5차 ~ 제6차 솔베이 회의에서 6년간 지속된 양자역학과 고전물리학의 싸움에서 패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인슈타인은 그 뜻을 같이하는 고전물리학파 물리학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양자역학을 무너뜨리기 위한 EPR역설을 발표한다.

 

 


저번에 다루었던 제5차 솔베이 회의에 이어 이번에는 제 6차 솔베이 회의이다.

아인슈타인이 두 차례의 패배를 맞이하며, 양자역학의 기반을 끊임없이 더 다져준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양자역학의 입지가 점점 거대해지는 순간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를 골자로 한 현대물리학은 오늘날에도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은데, 그 당시에는 얼마나 수많은 공격을 받고 무시당했을지... 새로운 패러다임이 씌여지는 건 그만큼 힘든일이었다는 것이 다시금 체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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