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런 편이다.
혼자서도 종종 영화를 보러 가고, 한 편을 봐도 대충 보지 않는 스타일이다. 아무래도 통신사 멤버십 할인도 한 달마다 사용해야 안 아깝고, 이런저런 영화 티켓 할인 기회가 많다 보니 어쩌다 보니 영화를 자주 보게 되는 문화인이 된 케이스.
하지만, 아무 영화나 보는 것은 또 아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호, 불호가 극명해졌기에 딱 봤을 때 느낌이 안 오는 영화는 제 아무리 유명한 영화라도 굳이 보러 가지는 않는다. 반대로, 별로 유명하지 않더라도, 마음에 드는 소재나 주제를 다루는 등 느낌이 오는 경우에는 몇 번이든 혼자서라도 보러 가는 케이스.
내가 최근에 감명깊게 본 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Tenet)'이다. 발이 심하게 다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3회 차 하러 혼자 낑낑대며 걸어서 영화관에 간 기억이 남는다. 그만큼 감명 깊게 보았다.
이외에도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 등 SF 소재를 다룬 놀란 작가의 작품들은 딱 내 취향에 맞다. 이외에도 전쟁을 다루는 영화(그중에서도 영웅적인 주인공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아닌, 배경만 '전쟁'인 작품들)나 잔잔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연출이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이외에도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나름 긴장감있는 스토리라인, 엉성하지만 군데군데 개그코드가 있는 명절 가족영화도 나름 가볍고 재밌게 즐겨 본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영화는 바로 '히어로'영화인데, 한창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히어로들! DC코믹스를 필두로 한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닥터 스트레인지 등의 휘황찬란한 히어로 무비는 정말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재미없게 본 건 아니다. 볼 때는 재밌었는데, 그냥 꺼려지는 장르이다. 자꾸만 악당에게 감정 이입해서, 자신들의 정의를 강요하는 폭력적인 주인공 일행의 위선적인 행태를 찾아내고 비꼬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내가... 나 자신이 이상한 건가? 싶은 생각이 자주 들어서 그런 장르를 꺼려하게 되는 것 같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번 포스팅에서 리뷰할 영화는 '더 파더(The Father)'라는 제목의 영화이다.
간단한 소개만 들어보니, 치매 노인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고만 얼핏 들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히어로 장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열광하는 장르인 SF도 아닌, 딱 중도적인 느낌의 영화였다. 장르만 봤을 때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에 대해 내가 강한 찬사를 하는 이유는 '연출'의 비중이 크다. 나는 이렇게 잔잔하면서도 긴장감 있고, 관객으로 하여금 쉴 틈을 주지 않는 연출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전통적인 주제를 가지고 각종 색채의 대비, 공간적인 연출, 시간의 배열 등을 현대적으로 뒤틀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상당히 괜찮은 영화였다. 시간 순서를 꼬아놓은 듯한 초반의 연출은 나와같은 관객들로 하여금 적잖은 당황을 선사하기도 하며, 집과 요양원의 공간적인 연출, 색상의 채도의 관한 연출 등 모든 연출이 치매 환자인 주인공 '앤서니'에게 쉽게 이입할 수 있도록 몰입감을 선사했다.
이러한 연출들이 주인공 '엔서니'의 상태를 전달하는 데에 있어서 효과적이었고, 상당히 좋은 작품성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 점은 높게 평가한다.
영화 내용은, 치매걸린 노인과 그를 돌보는 가족의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주인공 '앤서니'에게 너무 이입이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연출들과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나는 그저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이 아닌,
'후...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머리 무거워지고 생각이 깊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영화 속의 인물이 된 듯했다.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자신의 집 안 소파에 앉아있고, 사고로 잃었던 딸은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연락을 주고받던 것만 같았으며, 자기 자신마저도 자신을 믿을 수 없는 답답한 상황, 가족들에게 더 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면서도 의지하고 싶어 지는 안타까움.
'더 파더'를 통해 짧은 시간 안에 정말 강렬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두려워졌다.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되고 치매 환자가 된다는 것. 그 의미.
나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이야기였기에 전혀 신경도, 생각도 안 해보았던 주제.
그러나, 언젠가는 분명,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 뒤에 경험할 수도 있는 이야기.
과거 영광스러웠던 총명함은 온데간데없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말 그대로 어이가 없고 당혹스러우며,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
남아있는 가족들은 가족대로 또 고생스럽다.
내 삶에 대한 태도, 죽음에 대한 태도에 다시금 생각을 해보게 되고, 그때가 되었을 때는 조금 덜 당황하도록, 정신적인 무장을 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점 역시 높게 평가한다. 특별하지 않은 주제와 상황을 현대적이고 특별하게 잘 표현해 낸 영화.
'더 파더(The Father)'
잔잔하면서도 긴장감 있고, 당혹스러우면서도 안타까운, 너무 멀지만은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
기회가 된다면, 꼭 볼 수 있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