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큰 인기를 끌었던 미드 빅뱅이론.
실제 봉고와 리듬을 타며 수준급의 연주 실력을 보였던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을 따라한 것이다.
실제로 파인만은 쉘든 캐릭터 뺨치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괴짜 과학자였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과 청중을 잡아 끄는 쇼맨십으로 어려운 과학이야기도 대중들에게 쉽고 재밌게 풀어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번 포스티에서는 자유로운 영혼이자 아인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천재 과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매력을 해부해보겠다.
리처드 파인만은 1918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멜 파인만은 평범한 제복 회사의 판매관리인이었지만, 누구보다도 과학에 호기심이 많고, 또 배우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 아이는 태어나면 과학자가 될 거야'라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그래서 파인만의 아버지는 파인만에게 어린시절부터 과학 하는 즐거움을 가르쳤다. 둘은 주말마다 근처 숲으로 산책을 가 함께 자연을 관찰했다. 어느 날 파인만의 재수 없는 한 친구가, 숲에서 본 새 이름을 줄줄 외우며 자랑했다.
"새의 이름은 무엇으로도 불릴 수 있다. 이름은 본질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새를 관찰하고, 새가 도대체 왜 저런 짓을 할까 질문하고, 가설을 세우고 탐구하고 그 다음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쳤다. 아버지는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태도도 물려주었다.
'별을 단 군인에게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단지 배지때문이지, 그 사람이 대단해서가 아니란다.'
이런 가르침 덕분에 파인만은 권위를 행사하거나 명예를 얻는 것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권위에 기대지않고 항상 본질적인 것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 배웠다.
천방지축 개구쟁이였던 파인만에게도 사춘기의 뜨거운 첫사랑이 찾아왔다. 동네에서 제일 잘 나가던 알린을 보고 첫눈에 반한 것이다.
둘은 알콩달콩 연애를 하며 훗날 결혼을 약속했다.
파인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MIT까지 입학하게 된다. 학교에서 파인만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물리학이었다. 당시 물리학계는 전기 현상과 자기 현상을 연결한 전자기학과 원자의 역학 법칙인 양자역학을 통합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다.
즉, 빛과 같은 전자기파가 물질을 이루는 입자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한 큐에 설명하려고 한 것인데, 이를 양자전기역학이라고 한다. 파인만은 이 끝판왕급 문제에 도전하기로 마음먹는다. 연구를 하기 위해 파인만은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파인만이 대학원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여자 친구 알린에게 비극이 찾아온다. 알린의 목이 붓고 아프기 시작했는데, 의사들이 병명을 찾지 못하는 것이었다.
파인만은 학교 도서관에서 알린의 증상과 관련된 병을 모조리 뒤졌다. 가장 유력한 것은 결핵이었지만, 쉽게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파인만은 다른 불치병인 호지킨병을 예상했다. 그래서 파인만이 의사들에게 혹시 호지킨병이냐고 물어보니 의사들은 여러 의논 끝에 호지킨병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호지킨병이 사실이라면, 알린이 살 수 있는 시간은 딱 2년뿐이었다. 슬픈 파인만은 결혼을 서두르기 위해 대학원을 자퇴하고 직장을 얻어 결혼할 계획까지 모두 세웠다.
그런데 마지막 조직검사결과 알린의 진짜 병은 결핵으로 밝혀졌다. 가장 흔하고 유력한 병이라 의사들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파인만은 놀라면서도 다행이다 하면서 큰 교훈을 얻었다.
'모든 가능성을 두고 스스로 확인하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자.'
상황이 나아진 파인만은 열심히 연구를 이어간다. 결국 1942년 '양자역학에서 최소 작용의 원리'라는 논문을 내며 박사 학위를 받고, 이런 파인만의 연구성과나 뛰어난 능력을 알아본 동료가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 파인만은 처음에 계속 연구를 할지, 맨해튼 프로젝트에 들어갈지 계속 고민했지만, 자신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결국 파인만은 24살의 나이로 맨해튼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파인만은 맨하탄 프로젝트를 통해 '오펜하이머', '페르미', '폰 노이만', '닐스 보어' 등 당대 유명한 과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파인만은 폭탄이 폭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예측하기 위해 계산을 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모든 계산이 끝나자 폭탄을 떨어트리는 실험만이 남았다. 원자폭탄이 완성될 무렵, 파인만의 삶에도 폭탄이 떨어졌다. 결핵을 앓던 알린이 끝내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얼마 후에는 파인만에게 메시지가 날아왔다. 바로 원자폭탄의 탄생이었다.
원자폭탄을 시험으로 터뜨린 알라모고르도에서는 섬광이 반짝였고, 버섯모양의 구름이 뿜어져 나왔다.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전에 투입된다.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차례로 폭탄이 떨어지게 된다. 원자폭탄으로 인해 전쟁은 끝났고 조국은 승리했지만, 원자폭탄 프로젝트에 기여한 파인만은 깊은 죄책감과 우울감에 빠졌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것도 모자라, 온 열정을 쏟아 만든 원자폭탄이 인류의 위험으로 돌아서자 크게 낙담한 것이다.
모든 것이 쓸모없게 느껴졌던 파인만은 맨하탄 프로젝트가 끝난 후, 코넬대학의 교수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파인만을 부르는 러브콜은 끊임없이 쏟아졌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거물급의 학자들이 모인 고등학문연구소에서도 파격적인 대우로 스카우트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어떤 연구에도 몰두할 수 없었던 파인만은 이렇게 생각했다.
'기진맥진해서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니,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을 즐기며 물리학을 재미로 하자.'
'중요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내킬 때만 하면된다.'
의무감을 버리고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 물리를 다시 시작한 파인만은 남들이 보기에 쓸모없어 보이는 일들에 집중한다. 어느 날 모두가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릴 때, 과학 하는 마음을 멈출 수 없었던 파인만은 누군가 접시를 돌리는 모습을 보고, 회전하는 접시의 운동에 대해 고민한다.
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무려 상대론에서 전자 궤도가 움직인 느 것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 문제는 파인만이 대학원 시절 연구하던 양자 전기역학에 대한 문제였고, 파인만은 다시 연구에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949년 양자 전기역학의 시공간 접근법이라는 논문을 통해 파인만 도형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파인만 도형을 통해 전자와 입자의 복자 했던 상호작용은 단순한 기하학적 그림으로 손쉽게 표현됐고, 이런 표현 방법은 많은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 아주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이런 그의 창의적인 생각은 아마 과학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은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그는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기도 하였고, 브라질에서는 삼바 음악 연주를 즐기기도 했으며, 화가들과 어울리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파인만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었다. 글씨를 아주 작게 쓰고 이를 읽을 수 있다면 어떨까? 원하는 물체를 아주 작게 만들 수만 있다면, 사람 몸 안을 돌아다니는 로봇, 손바닥만 한 컴퓨터, 원하는 대로 원자를 배열해서 만드는 기계까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천재 과학자 파인만이 노벨상을 받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1965년 양자 전기역학을 완성한 공로로 2명의 과학자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했다.
파인만에게 진짜 상은 발견의 기쁨, 자신의 연구를 다른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사실과 같은 것들이었다. 연구와 교육,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파인만. 예순을 앞두고 몸에 암이 발병하게 된다. 암은 10년이 넘도록 파인만을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오랜 투병생활 속에서도 파인만은 삶의 열정을 잃지 않았다. 64세 때 14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마친 뒤, 학교에서 공연하는 뮤지컬에도 참여하며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모습도 보였다. 파인만은 이렇게 자신의 아픈 모습을 보이면서도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열정을 놓치지 않았는데, 1986년 챌린저호 공중폭발 참사에 대해 밝혀내는 위원회에 파인만이 참여하게 된다.
역시나 문제점을 깔끔하게 밝혀냈다. 챌린저호 폭발의 원인은 바로 로켓의 연료를 새지 않게 막아주는 접합부의 O-링이라는 고무로 만들어진 부품이었다. 파인만은 이를 직접 보여주기 위해 O-링의 고무를 얼음물에 넣어 탄력이 사라지는 실험을 TV 방송에서 보여줬다.
그러나 이렇게 인기가 많던 천재에게도 끝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가 그렇게 고대하던 투바 여행을 준비하고 있던 와중에 병이 또다시 재발하게 되는데, 결국 파인만은 1988년 2월 15일 영원히 눈을 감게 된다.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 권위와 명예를 내세우지 않았던 천재 물리학자 파인만. 그의 죽음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그의 삶을 다룬 방송과 다큐멘터리, 책이 남아 우리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다. 파인만이 위대한 과학자인 이유는 단순히 천재 물리학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대중들과 소통하고 또 과학의 가치와 책임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깨닫고 설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파인만의 인생을 살펴보니, 이 세상의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또 우리가 사랑하는 과학이란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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