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신의 입자 '힉스 입자'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인터넷 곳곳에 떴던 사실을 기억한다.
당시, 이런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아, 그냥 어딘가에 사는 과학자가 엄청난 발견을 해냈구나' 싶어서 그냥 대충 제목만 보고 넘어갔지만, 갑자기 뜬금없이 궁금해지는 건 뭐람.
지금부터 다뤄볼 이야기는 물질에 질량을 부여한 '신의 입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 걸까? 어떤 입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있는 걸까? 아득한 과거부터 사람들은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눈에 보이는 물질들을 잘게 잘게 쪼개서 작은 입자들을 찾아내는 과학의 역사.
그렇게 함으로서 우주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한 모든 입자들과 이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표준모형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러한 표준모형을 다듬고 완성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래스는 만물이 흙, 물, 공기, 불 4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4원 소설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우리와 같은 현대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맞지 않는 생각이다.
흙이나 물을 계속 쪼개다보면, 근본적인 성질은 유지하지만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인 '원자'가 나오게 된다.
더 이상 쪼갤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이를 더 쪼개 보면 원자핵과 전자로 나뉘게 되고, 이 원자핵도 더 쪼개 보면 양성자와 중성자, 여기서 더 쪼개면 업 쿼크, 다운 쿼크...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참 많이도 쪼개 왔다.
쿼크는 물리학자 머리 겔만이 발견한 우주의 기본입자이며,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피네간의 경야>에 나오는 갈매기가 외치는 울음소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예컨대 원자라는 아주 작은 기본입자도 쪼개진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중성자보다 더 작은 중성미자라는 것도 있다. 질량이 너무 작아서 직접 측정하기도 어려울 정도인 이 입자는 이 존재를 예측했던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조차도 이를 검출해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걱정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결국 중성미자마저 찾아냈고, 현대에는 흙, 물, 공기, 불의 4가지 원소는 아니지만 업 쿼크, 다운 쿼크, 전자, 중성미자의 현대판 4원 소설이 등장했다.
업 쿼크와 다운 쿼크는 통틀어서 쿼크로 칭하고, 전자와 중성미자는 렙톤이라고 칭했다.
이는 1세대 기본입자이며, 현재까지 발견된 세대는 총 3세대까지 존재한다.
2세대, 3세대 역시 4가지 기본입자로 구성되어있으며, 세대별로 각각 대응하는 입자들은 모든 양자수가 동일하다. 각운동량이나 스핀처럼 고유한 물리량이 같다는 것이다. 이렇든 고유한 물리량이 동일하지만, 각 세대를 구분 짓는 건 바로 입자의 질량이다. 1세대 4가지 기본입자와 동일한 양자수를 갖고 있지만, 질량이 다른 2세대 3세대 입자들 덕분에 이제 이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는 총 12개라고 밝혀졌다.
세대마다 두 종류의 쿼크와 두 종류의 렙톤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본입자를 6개의 쿼크와 6개의 렙톤의 조합으로 볼 수도 있다. 이 12개의 기본입자를 '페르미온'이라고 부르며, 이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알아내면 지금의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
우주에는 4가지 힘이 있다.
중력, 강력, 약력, 전자기력. 이 4가지 힘 중 중력과 전자기력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매우 익숙한 힘이며, 나머지는 상당히 생소할 것이다. 우리가 땅에 멀쩡히 두 발 붙이고 있는 것이 바로 중력 덕분이고, 우리가 물건을 만질 때 전자들의 반발력으로 인해 느껴지는 촉감 역시 전자기력 덕분이다.
같은 전하를 띤 입자는 전자들에 의해 서로 밀어낸다. 양성자의 경우에도 반발력이 있는데, 이런 반발력을 이겨내고 단단히 결속시켜 원자핵을 완성시키는 힘이 바로 강력이다. 쿼크 사이에서 작용하며, 태양이 만들어내는 폭발적인 에너지의 근원이라 할 수 있겠다.
약력의 경우에는 한 종류의 입자가 다른 종류의 입자로 바뀌면서 작용하는 힘이며, 강력이나 전자기력보다 약하기 때문에 이름이 약력이다. 그러나 중력보다는 강하다. 방사성 붕괴 중, 베타붕괴의 원인이 되는 약력을 이용하여 인류는 원자폭탄이나 원자력발전소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4가지 힘의 근원은 과연 무엇인가?
현대 물리학에서는 이것을 상호작용하는 대상끼리 서로 주고받는 매개입자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만약 공놀이 중에 배구공을 주고받는다면 이 공놀이는 배구이고, 농구공을 주고받는다면 이는 농구인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가지 힘도 마찬가지로 두 입자가 서로 매개입자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힘이 생긴다고 설명된다.
이러한 매개입자들을 보손이라고 한다. 12개 기본입자를 페르미온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해하면 되겠다.
광자를 주고받으면 전자기력이 생기며, 강력은 글루온을, 약력은 Z보손과 W보손을 주고받으며 발생한다. 여기서 광자, 글루온, Z보손, W보손이 전부 힘을 매개하는 게이지 보손(Gauge Bosons)인 것이다.
존재하는 작은 입자들은 전부 보손이거나 페르미온인 것이다. 그러나 중력의 매개입자는 누락되어있다. '중력자'라는 보손이 존재할 것으로 추측하지만, 아직은 발견되지 않았다. 중력은 4가지 힘 중에서 특출 나게 약한 편이라, 다행히 미시세계로 들어가면 적당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강력과 전자기력, 약력처럼 강한 힘은 작은 입자를 만들어냈지만 광활하고 거대한 우주는 매우 약한 중력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건 상당히 신비롭다. 만약 나중에 중력자가 발견된다면, 표준모형은 더욱 완벽해질 것이다.
이 우주는 12개의 기본입자인 페르미온과 4개의 매개입자인 보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런데 이들의 질량이 모두 다르다. 아주 무거운 입자도 있고 심지어는 질량이 아예 없는 광자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에게 부여된 질량이라는 물리량은 어떤 것인가? 무엇이 이들에게 질량을 부여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등장했다. 그는 표준모형을 이루고 있는 페르미온과 보손이 질량을 갖는 이유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했다.
표준모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앞서 등장했던 '게이지' 대칭성이 필요한데, 과학자들이 말하는 대칭성이란 어떤 변환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자석의 경우, N극과 S극은 우주 어디에 있더라도 서로 잡아당긴다. 이를 보고 과학자들은 대칭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게이지라는 단어는 일종의 기준을 말하며, 이 두 자석이 서로 밀거나 끌어당기는 이유는 바로 전자기력 때문이다. 이러한 전자기력이 작용하는 공간을 전자기장(field)라고 부르며 이러한 전자기장 내에서 시공간을 어떻게 바꾸든 자석은 여전히 같은 극은 밀어내고 다른 극은 당기는 상호작용을 한다. 이럴 때 이를 게이지 대칭성을 만족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게이지 대칭성을 만족하는 공간, 장(field)에서는 힘을 전달하는 매개입자의 질량이 0이 되어야 하며, 실제로 전자기력의 매개입자인 광자의 질량은 0이다.
우주 시공간 어디에서든 상호작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질량이 0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주 작은 영역에서 작용하는 힘에 있었다. 원자 내에서 작용하는 약력의 경우, 매개입자가 질량을 갖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작용하는 범위가 전자기력처럼 무한하게 뻗어 나가지를 못하고 도중에 끊어져버리는 것이다. 바로 게이지 대칭성이 깨진 것이다.
과학자들은 궁금했다. 무엇이 이러한 '게이지 대칭성'을 깨트리는 것인가? 어떻게 입자들이 질량을 갖게 되는 것인가?
1964년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는 '프랑수아 앙글레르', '로버트 브라우트'와 함께 자발적으로 게이지 대칭성이 깨지는 과정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다. 바로 힉스 메커니즘의 발견에 관한 내용이다.
물질들에게 질량을 부여하는 건 '힉스 입자'가 아니라, 힉스 작용의 원리인 힉스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힉스 입자는 이러한 힉스 메커니즘의 명백한 증거인 것이다.
상호작용이 많을수록 입자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작용을 힉스 메커니즘이라고 하며, 이러한 작용이 일어나는 공간을 힉스 장(field)이라고 부른다. 힉스 장은 우주 전체에 균일하게 퍼져있으며, 물질과 상호작용을 한다.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하는 물질일수록 우리는 질량이 크다고 인지하는 것이다. 무거운 물질을 밀면 꿈쩍도 안 하는 것이 곧, 미는 대상이 힉스 장과 상호작용을 많이 하기 때문에, 미는 힘에 대해 더 강하게 저항하며 이때 질량이라는 물질 고유의 물리량이 크다고 정의한다는 것이다. 힉스 장은 물질이 상호작용 하는 순간 특정한 값을 갖게 되며, 이 값이 다른 입자에게 질량을 부여한다고 한다. 만약 힉스 장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입자, 예를 들어, 광자 즉, 빛의 경우는 질량이 없고 언제나 우주 공간 속에서 최대속도로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힉스 입자가 무엇인지, 힉스 입자의 발견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으나, 사전의 배경지식을 서술하느라 글이 길어졌다. 그렇지만 '피터 힉스'가 등장하고 힉스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므로 이제 다 왔다!
쿼크와 렙톤, 페르미온과 보손, 그리고 4가지 기본 힘의 경우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다. 기본 힘과 그 상호작용의 매개 입자 등. 사실 배우지는 않았고 그저 받아들여서 외우는 식이었다. 이제 와서 세대를 구분 짓고 보니 대충 머릿속에 그려진다. 늦게나마 이렇게 몰랐던 것들을 파헤치게 되어 참 다행이다.